흔한 독처럼 내장이 타들어가거나 입술이 메마르는 일은 없었으나, 해가 지면 작아지고 동이 트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어제도 이와 같았다. 담벼락 너머 해가 떠오를 때쯤 몸을 잡아비트는 느낌이 선연했다. 오늘 밤도 마찬가지라면, 신이치는 두 개의 가정을 하나로 줄일 수 있었다. 부작용은 사라지지 않았다. 불운 중 무운인 것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잘못 날아온 새는 주인에게 돌려줘야 마땅하다. 화살이 직접적으로 꽂힌 게 아니라 방향을 유추할 수는 없지만, 이런 경우 대개 물건을 흘린 자들이 주변을 배회했다. 쏘아지지 않고 침상에 가지런히 놓인 화살을 실수로 두고 갈 리가 있겠느냐만은, 사람 우습게 여기는 이에게 줄 눈치는 없었다. 괘씸죄면 모를까. 이걸 둔 범인은 지금쯤 신이치가 쪽지를 이행할지 혹은...
신이치라고 처음부터 후루야를 쥐어뜯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고결한 가문의 귀족이고, 신이치는 또래보다 인내심이 좋아 어른스럽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실제로도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형누나들과 곧잘 어울렸다. 그런 신이치가 머리카락만 스쳐도 이를 악 물고 으르렁대는 건 전적으로 후루야의 잘못이었다. 존댓말을 꼬박꼬박 쓰면서 사람 속을 어찌나 박박 긁어놓는지. ...
쿠도와 후루야는 예로부터 끔찍한 원수지간이었다. 아주 과거에는 등을 맞댄 채 서로를 의지하며 검을 휘두르기도 했다는데... . 신이치의 고조부조차 긴가민가 해서 끝내 물음표로 남긴 까마득한 과거를, 이제와 새삼스레 떠올릴 리가 없었다. 그래서 후루야의 장자 후루야 레이는 시도때도 없이 쿠도의 독남인 쿠도 신이치에게 시비를 걸었다. 주둥이만 털면 다행일까. ...
둘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한 시간 반이 지난 뒤였다. 사카모토의 다짐대로 오류가 고쳐지기까지 한 시간이 넘지 않았으나, 신이치의 정신은 이미 망신창이였다. 쾌락에 절여진 뇌가 제기능을 하지 못 해 캡슐을 걸어나오는 행위조차 버거웠다. 후루야가 손을 잡고 일으키지 않았다면 족히 10분은 걸렸을 테다. 손을 잡는, 아주 간단한 접촉으로도 남아있던 감각 때문에 ...
"후루야 씨는 왜 코난만 좋아해요? 신이치는 싫어?" 맙소사. 어느 쪽이 더 좋냐 싫냐를 떠나서, 둘이 다른 존재임을 각인시킨 건 후루야가 아니라 신이치 쪽이었다. 조금만 알고 있다는 티를 내도 코난이랑 안 친해서 모르겠는데요? 하던 게 누군가. 후루야는 몇 번이나 신이치에게 코난의 존재를 물었고, 그때마다 몇 번이나 돌려서 거부당했다. 신이치와 코난은 별...
사카모토도 의식하고 있던 부분이었는지, 목덜미부터 귓가가 부끄러움으로 물들었다. 차마 하늘 같은 상사인 팀장님을 욕하지 못한 그가 다급한 손길로 돔을 열었다. "들어가서 헬멧을 쓰시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안내받을 수 있으실 거예요. 체험 시간은 40분이고, ...음. 직원들끼리 해봤을 때는 괜찮았는데, 만약에! 정말 만약에 오류가 생길 경우에는 한 시간 안...
심신미약에 걸렸다. 병원에 가면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 정말 상태창 밑에 <심신미약> 이 적혔다. 그러니 신이치가 코를 훌쩍이며 "후루야 씨는 대체 왜 그 모양이에요?" 묻는 건, 어디까지나 이 망할 디버프의 영향이라는 거다. 심신미약(B급)횡설수설-아무 말을 내뱉습니다. 혹시 평소에 담아뒀던 진심일지도?엉엉-눈물샘이 마르고닳도록 ...
"형씨는 그렇다치고, 이틀만에 다섯이나 찾아왔으면 차라리 경호원을 두지 그래?" 이번이야 운이 좋아 무사히 넘어갔다지만, 단체로 몰려오기라도 하면 대형사고다. 마침 손님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엄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다. 우수수 쏟아지는 아날로그식 협박 편지에도 멀쩡히 밖을 돌아다녔던, 그 시절의 패기 넘치는 신이치를 떠올린 핫토리가 미리 말을 골랐다. 거...
형식적인 노크 끝에, 들어와도 된다는 건방진 목소리를 배경 삼아 핫토리가 나무문을 벌컥 열었다. "핫토리? 네가 여긴 왜 왔어?" "왜 왔어어~? 쿠도 니가!" "내가?" 하, 됐다.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본인의 관심사가 벗어난 곳에서는 정말 더럽게 눈치없는, 혹은 눈치없는 척하는 신이치를 겪는 것도 이제 일상이다. 의뢰인 용으로 가져다둔 소파에 ...
장황하게 이어지는 설명들을 요약하자면, '아무로 씨가 탄 커피가 맛있다' 였다. 신이치는 예민할지언정 까다롭지는 않은 입맛의 소유자다. 무던해서 뭘 주든 입에 넣을만 하면 먹었고, 신이치가 못 먹겠다며 뱉어낼 정도라면 어지간한 사람들도 삼키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신이치의 직접적인 '맛있다' 라는 언급을 듣기는 하늘의 냥고로따기였다. 먹을 수...
콩콩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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